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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해외 여행(2022)

[산티아고 순례길] 오리손산장-부르게떼(Refuge Orisson-Brugette) / 나폴레옹 루트, 부르게떼 알베르게-Day2

by 우당탕탕이 2022. 7.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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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4.12 Tue 산티아고 순례길 둘째 날. 본격적으로 피레네 산맥을 거쳐 프랑스에서 스페인으로 국경을 넘어가는 날이다. 오리손 산장은 아무래도 산 중턱이라 그런지 와이파이도 안되고 인터넷도 잘 안된다. 저녁 먹고 바람이 너무 심해서 밤에 별 보러 나가지도 못하고 방에서 인터넷도 못하고 일찌감치 잠이 들었다. 전날 산을 오를 때는 날씨가 참 좋았는데 아침부터 날씨가 심상치 않았다. 우리는 날씨의 운이 참 없었던 것 같다. 

cover image

 

둘째날 시작!

잘 때도 바람 소리가 너무 심해서 어디 날아가는 거 아닌가 하고 무서웠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비까지 퍼붓고 있었다. 파리 데카트론에서 판초우의를 살까 말까 고민을 했지만 짐도 늘리고 싶지 않고 바람막이가 있으니 괜찮겠지 하는 생각에 결국 사지 않았다. 그런데 하필 비가 와도 제일 고난도 코스를 가는 날 이렇게 비가 올 줄이야. 게다가 전날 산을 오르면서 짝꿍의 등산화 밑창이 떨어져 덜렁거리게 되었다. 저녁을 먹고 오리손 산장 측에 본드가 있을까 해서 물어봤는데 다행히 산장 셰프님이 신발 수선 전문가라면서 다음날 아침 출발 전에 찾으러 오라고 했다. 아침을 먹고 셰프님을 찾아갔는데 비록 본드는 덜 말랐지만 밑창은 말끔하게 붙어 있었다. 오리손 산장 동기들은 짝꿍의 등산화를 보며 비도 오는데 괜찮겠냐며 걱정해 주었지만 출발을 안 할수도 없고 기왕 간다면 빨리 출발해야지 하는 마음에 오리손 산장을 나섰다. 

 

고난의 시작 

전날 산을 오를 때 땀을 좀 흘려서 오늘도 비가 오다가 그치면 덥겠지 하는 생각에 옷을 얇게 입고 출발했는데, 날씨는 약간 추웠지만 등에 있는 배낭이 보온효과를 맡아주었다. 초반에 비는 맞을만 했고 차갑지만 맑은 공기가 상쾌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점점 산을 오르면서 바람이 거세지더니 빗방울도 굵어졌다. 뒤로도 걸어보고 앞으로도 걸어보고 옆으로도 걸어보고.. 어떻게 걸어도 추웠고 얼굴로 꽂히는 빗방울이 마치 우박 같았다. 도저히 안 되겠어서 모양새는 좀 웃기지만 파리에서 산 고물 우산 뒤에 숨어 걸었는데, 이 우산이 빗방울도 막아주고 바람도 막아줘서 일등공신 아이템이었다.

이번엔 짝꿍의 등산화가 말썽을 부렸다. 신발에 붙은 덜 마른 본드가 걸을 때마다 거품을 물고 신발 밖으로 빠져나오고 있었다. 가뜩이나 덜 마른 본드가 물이랑 섞이니까 붙었던 것까지 떨어지고 있었다. 이제 걷기 시작했는데.. 우리는 당황스러웠지만, 어차피 다 젖었고 내 발이 수족관 안에서 걷는다고 생각하고 웃으며 앞을 나아갔다. 

 

고난, 앞으로 전진

 

꽤 오래 갔다고 생각했는데 갈 길은 멀었고 날씨는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교과서에서 배운 피레네 산맥을 내 발로 넘는 역사적인 순간인데 멋진 풍경은 커녕 안개, 바람, 빗방울 3 콤보가 앞도 못 보게 하고 몸도 가누지 못하게 만들었다. 귀가 먹먹할 정도로 높이 올라왔는데 날씨가 좋았다면 얼마나 풍경이 멋있었을까.

판초우의를 입은 오리손 산장 동기들도 우의가 있어도 바람 때문에 앞으로 전진하는걸 무척 힘들어했고 우의가 막아줄 정도의 빗방울이 아니었다. 힘들어도 도중에 앉아서 쉴 곳도 없었지만 걷는 걸 멈추면 급격하게 추워지기 때문에 계속 움직여서 열을 만들어야 했다. 이렇게 우리 모두 전우애가 형성되고 있었다. 

날씨가 좋았다면 얼마나 예뻤을까.

 

그렇게 비폭풍과 사투를 벌이던 와중에 짝꿍의 말수가 점점 줄어들었다. 고도는 높아지고 기온은 낮아지고 젖었던 몸이 바람을 계속 맞으면서 몸의 열을 계속 뺏기고 몸에 이상이 오고 있는 것이었다. 중간에 멈출 곳도 없고 계속 가야 하는데 짝꿍은 허벅지가 잘 움직이지 않는다며 입술이 파래지고 있었다. 방수가 되는 내 바람막이도 너무 비를 많이 맞아서 속이 다 젖었는데 생활 방수 수준의 바람막이를 입은 짝꿍은 진작에 다 젖었던 것이었다. 근육도 경직되니까 짝꿍의 몸은 점점 떨렸고 가던 길을 멈출 수도 없어서 우산으로 바람을 막으면서 앞만 보고 갈 수밖에 없었다. 내가 걱정할까봐 말은 못하고 묵묵히 따라왔던 것 같은데 짝꿍이 잘못되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에 걱정이 됐다. 

피레네 산맥 정상에는 Izandorre라고 응급 쉘터가 존재하는데 그 곳이 유일하게 딱 하나 산 길 위에 있는 실내로 조난자 구조도 많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멀리서 오두막 한 채가 보이니까 없던 힘이 솟아났다. 안에 들어가 보니 함께 걷던 오리손 산장 전우들이 이미 지쳐서 쉬고 있었다. 몸을 녹이며 가방에 있는 모든 옷을 껴 입었고 나는 침낭까지 꺼내서 온몸에 둘렀다. 따뜻하지도 않았고 빛도 없는 허름하고 작은 오두막이었지만 조금 쉬고 간단하게 허기만 좀 달랬더니 한결 나아졌다.

 

정상에는 녹지 않은 눈이 있었다.

 

아무래도 몸 상태가 안 좋아서 이 이후로는 사진도 못 찍고 앞만보고 걸었다. 구름이 내 손이 닿을락 말락 한 거리에 왔는데 아직 녹지 않은 눈이 있었다. 어쩐지 이러니까 안 추운게 이상한 거지.. 황당해서 웃음이 났다. 내 시야에 안에 구름 반, 땅 반이 들어왔다. 그나마 비는 그쳐서 다행이었지만 해가 떴더라면 얼마나 경치가 예뻤을까 하고 생각했다. 

 

고난을 극복, 하산.

정상 근처에는 나무들이 바람을 하도 맞는지 그 맞는 방향대로 나무가 휘어져있었다. 정상을 찍고 드디어 하산하는데 내려가고 내려가도 끝이 없다. 나무가 빽빽하게 박힌 숲들을 지나갔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너도밤나무 숲이라고 한다. 

 

론세스바예스(Roncesvalles)를 지나 부르게떼(Bruguette)로. 

프랑스에서 스페인으로 넘어왔다. 대부분의 순례자들은 워낙 피레네 산맥을 넘는 것이 고난도이다 보니 제일 먼저 도착하는 론세스바예스 마을에서 다들 머문다. 지금 생각해도 정상에서는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최대한 빨리 멈추고 싶었는데 우리는 왜 굳이 마을 하나를 더 갔는지는 잘 모르겠다. 나중에 순례자들한테 듣기론 론세스바예스 공립 알베르게가 그렇게들 좋다고 모두들 칭찬을 하던데 나중에 까미노를 또 하게 되면 가보아야겠다.

 

론세스바예스 마을 / 부르게떼로 가는 길

 

 

부르게떼 도착!

론세스바예스에서 부르게떼까지는 3km밖에 안된다. 우리는 숙소 예약을 안 하고 걸었기때문에 대부분 순례자들이 론세스바예스에서 멈추니까 마을 하나 더 가면 숙소가 좀 여유롭지 않을까 하는 생각과 3km면 부담스럽지 않은 거리라 갈 수 있었던 것 같다. 부르게떼로 가는 길은 아스팔트길을 가다가 평평한 흙길이다. 정말 편하게 산책하는 마음으로 부르게떼 마을로 진입했다. 

 

부르게떼 마을 초입

 

부르게떼 알베르게_ Lorentx albergue

가격 : €15/1인(2층 침대), 조식 제공(€5), 저녁 제공 x

시설 : 개인 콘센트 o, 개인 스탠드 o, 세탁시설 o, wifi o, 침대/베개 커버 미제공

기타 : 생긴 지 얼마 안된시설들이 깨끗하고, wifi 정말 빠름.

 

몸이 너무 고생을 해서 알베르게보다 2인실로 가려고 했다. 그래서 몇 군데 찾아갔는데 아직 순례객을 받지 않는다고 하면서 이 알베르게를 추천해주었다. 어쩔 수 없이 가게 된 곳이었는데 생각보다 기대 이상으로 너무 좋았다. 론세스바예스 알베르게가 얼마나 좋은지 모르지만 나는 체력이 있다면 조금 더 힘내서 여기 알베르게에 묵는 것도 추천한다. 

한 방에는 2층 침대 2개로 4명이 정원이고 방 문에는 번호키가 달려있다. 샤워실 2칸 화장실 2칸이다. 주방도 있지만 내가 갔을 때는 사용할 수 없었다. 지금 사용 여부에 대해서는 확인이 필요하다. 시설이 생긴지 얼마 안돼서 깨끗하고 좋고, wifi가 방 안에서도 너무 빠르고, 무엇보다 조식이 너무 좋았다. 

 

알베르게 앞
알베르게 내부(좌측부터) 침실, 복도, 주방, 커피머신

 

작지만 분위기가 좋았던 마을, 부르게떼

이상하게 월요일인데 슈퍼마켓이 일찍 닫는다고 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슈퍼마켓에 가서 문들 두드렸지만 굳게 닫힌문은 열리지 않았다. 배는 너무 고프고 먹을 수 있는 레스토랑은 한 군데뿐이라 전날 까르푸에서 산 비상식량과 한국에서 가져온 육포로 허기를 달래며 레스토랑이 문 열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마을에 사람이 너무 없어서 휑 했지만 아기자기한 분위기가 매력적이었다. 

골목마다 집이 늘어져있고 동네도 작은데 아기자기하다.

 

 

저녁식사_ Hotel Loizu Restaurant

가격 : 메뉴 델 디아 2인 + 맥주 2잔 : €23.50

동네에 저녁을 먹을 수 있는 곳이 이곳뿐이라고 했다. 가격도 합리적이고 조금 짜긴 했는데 맛도 나쁘지 않았다. 저녁은 8시에 먹을 수 있었고 오늘의 메뉴의 세부 메뉴 선택은 없고 호박 수프, 메인 메뉴는 모두가 동일하다. 디저트는 과일 종류를 말해주고 고르라고 한다. 

저녁 메뉴델디아 : 호박스프, 빵, 메인음식, 디저트 과일

 

 

 

산티아고 순례길 둘째 날, 프랑스 오리손 산장에서 나폴레옹 루트 피레네 산맥을 넘어 스페인 부르게떼 마을까지 20km 마무리했다.

날씨가 우리의 편이 아니고 초반부터 혹독하게 겪었지만 안 다치고 건강하게 내려왔으면 된 거다. 극한의 상황에서 짝꿍과 전우애까지 얻었으니 앞으로 어떤 것이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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