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4.14. Thu. 산티아고 순례길 넷째 날이다. 날씨는 흐리고 추웠지만 비가 오지 않음에 감사했다.
여기 와서 느끼는 것이 정각이 되면 마을마다 있는 성당에서 정각마다 종을 쳐서 알려준다는 것이다. 그 종소리가 시끄러울 법도 한데 나는 그저 좋았다. 아침이면 가뜩이나 무거운 몸이 천근만근이다. 힘들게 몸을 일으켜 테라스에 나가 종소리를 들으며 멍을 때리며 하루를 시작했다.
숙소에 사용할 수 있는 도구가 한정적이라 커피포트로 가볍게 만들 수 있는 스페인 표 컵라면을 전날에 슈퍼에서 사뒀고 아침으로 먹었다. 아침으로 무슨 컵라면인가 싶었지만 몇 일을 퍽퍽한 빵만 먹었던 터라 뜨끈한 국물이 그렇게 먹고 싶었다. 오늘의 목표 마을은 그리 멀지 않은 팜플로나라는 곳이다. 팜플로나는 프랑스 까미노 길에서 처음으로 가게 되는 큰 도시로 공항도 있고 편의시설이 많은 도시이다. 우리나라의 광역시 정도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짐을 꾸리면서 짐을 봤는데 아무래도 무게를 더 줄이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여분으로 챙긴 외출용 원피스와 3구 멀티탭을 버리고 가기로 짝꿍과 결정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얼마 무겁지 않은 물건이었는데 그때는 그거라도 놓고 가야 몸이 가벼워질것 같았다. 가방이 한결 가벼워졌다는 마음으로 가볍게 숙소를 나섰다.
전날 짝꿍은 막대기 2개를 주워서 짚고 다녔는데 그 나무 막대기 2개 중 1개는 누가 마음에 들었는지 가져가버렸다. 쌀쌀한 공기를 맞으며 길을 나섰고 아직 우리의 다리는 회복 중이라 걷는 속도는 더디다.
동물들은 지나가던 길을 멈추게 한다. 휴식하면서 삶은 달걀을 꺼냈는데 동네 고양이들이 어떻게 알고 내 앞으로 줄을 서고 몸을 비비고 예쁜 짓을 한다. 귀엽지만 내가 다 먹었다.
왼쪽 밑창이 결국 떨어져버렸다.
걷는 길이 힘들지는 않았다. 짝꿍의 등산화 밑창은 앞쪽 하고 뒤쪽 하고 붙어 있었는데 달랑거렸지만 지금까지 잘 버텨주었다. 물론 불편한 신발로 짝꿍도 잘 걸어주었다. 하지만 신발을 새로 사려면 오늘 가는 큰 마을에 데카트론이 있기 때문에 오늘까지는 버텨주길 바랬지만 역부족이었던 것 같다. 결국 얼마 가지 않아 왼쪽 밑창이 떨어져 버렸다. 밑창 위에는 오리손 산장 셰프 아저씨가 붙여준 흰색 본드의 잔해가 남아있다.
한쪽 밑창만 떨어져서 등산화의 높이가 맞지 않으니까 걷는데 불편할 것 같아서 나머지 한쪽도 떼어버리는 게 어떠냐고 짝꿍에게 물었다. 밑이 두툼한 게 좋다며 자연스럽게 떨어질 때까지 달고 가겠단다. 다시 출발.
그리운 친구 Maggie와의 첫 만남
산티아고 순례길에서는 길 위에서 '부엔 까미노(buen camino)'라고 순례자들끼리 서로 인사를 한다. 좋은 길 되라는 뜻인데 이렇게 인사를 하며 누구나 서로 대화를 시작할 수 있다는 길 위의 매력이 있다. 지금까지 걸으면서 못 보던 부부였는데 결혼 50주년 기념으로 미국 아리조나에서 온 부부 Maggie와 Jin을 이 날 우연히 만나 친구가 되었다. 그녀는 이 순례길에 한국 사람이 많은 것이 궁금했는지 처음 질문을 했다. 이런저런 대화를 하면서 그렇게 한 참을 걸었던 것 같다. 그때는 서로의 이름을 물어보는 것도 잊고 서로 이야기를 들어주고 서로 이야기를 하며 길을 걸었는데 그 대화가 따뜻하고 지금은 그립다.
Maggie와 Jin은 휴식이 필요해서 다시 우리 둘은 나중에 만나길 기약하고 헤어졌다. 내 발목 상태가 영 좋지 않았다. 짝꿍은 배낭이 나를 눌러서 다리에 무리가 가기 때문에 다리가 나을 수가 없는 것이라며 자신은 다리가 많이 나아졌으니 배낭 두 개를 메고 가보겠다고 했다. 까미노 4일 차에 완전군장을 시키다니.. 덕분에 몸이 편하게 몇 km는 걸었다. 고맙다 전우야
점심_La Parada de Zuriain
샌드위치, 오믈렛, 오렌지주스, 커피 = €12
걷다가 처음으로 나오는 카페여서 그런지 사람이 많았다. 닭들은 풀밭을 돌아다니고 한가로운 카페였다. 한참을 기다려 음식을 받고 쉬고 있는데 카페 안 쪽에 Hisako, Chris 부부와 친구들과 재회했다. 하이파이브에 포옹에 무척이나 반가웠다.
다시 출발 준비를 하고 카페를 나섰다. 잔디가 펼쳐진 넓고 평평한 길을 걸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짝꿍의 오른쪽 밑창도 결국 떨어졌다. 양쪽 밑창이 모두 떨어져서 그가 찬양하던 파이브텐 등산화는 이제 등산화의 기능을 잃고 말았다.
여러 마을 지나서 Arre라는 마을까지 도착했다. 아레는 초입부터 참 예쁜 마을이었다. 팜플로나까지는 4km만 더 가면 된다.
팜플로나에 가까워질수록 자연환경이 많은 시골 풍경보다는 좀 더 개발된 건물과 집, 길이 많아졌다. 아레 마을을 지나 Villava, Burlada마을을 걸었다. 우리나라에 있는 가로수처럼 스페인에도 가로수가 있는데 신기하게 반대편 가지가 서로 엮여서 이어져있다. 이대로 쭉 자라는 신기한 나무 같다.
드디어 팜플로나 진입!
저 멀리 팜플로나로 들어가는 다리가 보였고 성벽이 보였다. 팜플로나까지 20.4km 여기서 마무리.
우리는 숙소 예약을 안 하고 다니기 때문에 마을로 들어서자마자 알베르게부터 찾았다. 까미노 닌자 앱에 나와있는 알베르게 가까운 순으로 침대 있냐고 물어보러 들어갔으나, 부활절 휴일이라 베드며 방이며 거의 모든 알베르게가 없었다. 길바닥에 눕고 싶었다..
팜플로나 공립 알베르게_ Albergue Jesus Y Maria (Municipal de peregrinos)
가격 : €11/인, 조식, 저녁 제공 x,
시설 : 주방사용 가능, 개인 콘센트 x, 개인 스탠드 x, 세탁시설 o, 침대/베개 커버 제공, wifi o
기타 : 침대는 온 순서대로 배정됨, 공용 샤워실
다 묻고 마지막으로 간 곳이었는데 정말 다행히도 공립 알베르게에서 2 베드를 찾았다. 처음으로 간 공립 알베르게였는데 나한테는 비주얼이 충격적이었다. 큰 도서관에 2층 침대를 쫙 나열해 놓았는데 태어나서 이렇게 많은 2층 침대는 처음 보았다. 위생이나 시설이 괜찮을까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시설이 좋았다.
가방만 놓고 짝꿍의 등산화를 사러 데카트론으로 향했다. 부활절 휴일이라 사람이 길목마다 너무 많았다.
데카트론에 갔는데 예상대로 예쁜 디자인의 등산화는 찾기 어려웠다. 그런데 가격이 €39.99인가 너무 싼 등산화? 하이킹화 느낌의 신발이 있어서 이것과 함께 5.99짜리 스틱 2개도 함께 구입했다.
다시 알베르게로 돌아와서 씻고 옆에 있는 헝가리 언니가 내일 휴일이라 마켓이 모두 닫을 거라면서 오늘 살 것 있음 사두라고 정보를 주었다. 후다닥 준비를 하고 나섰는데 길거리에 사람도 너무 많고 행사도 많이 한다. 좀 보고 싶었지만 배도 고프고 다리도 아프고 무엇보다 키가 작다.
저녁_El cafe de pablo
햄버거, 나쵸, 맥주 2잔 = €21
사람이 정말 많았다. 대부분의 식당은 7시 반, 8시부터 저녁을 주는데 역시나 그 전에는 밥을 주는 레스토랑을 찾기란 힘들었다. 들어가는 레스토랑마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앉을 곳도 마땅치 않았다. 결국 아무 데나 들어가게 된 레스토랑이다. 영어 메뉴판은 없었고 술을 파는데 더 치중돼서 엄청 바쁜 곳이었다. 음식 가격은 그렇게 비싸진 않았는데 맛이 별로였다. 햄버거는 무난한 정도였으나 나쵸에 올라간 치즈가 내가 먹기엔 많이 꼬릿 하고 맛도 그다지이었다.
큰 도시라서 여기저기 좀 돌아다니고 싶었는데 몸 상태가 너무 바닥인 데다가 날씨도 너무 춥고 사람들도 너무 많아서 길목을 돌아다니기가 힘들었다. 저녁 먹고 알베르게에 일찍 돌아가서 휴식을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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