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프롤로그
2022년 4월 7일 산티아고 순례길로 떠나기 위한 파리행 비행기 티켓을 샀고, 한국에 돌아온 지 한 달이 다 되어가지만 아직도 다녀왔다는 것은 실감이 안 난다. 사실 난 떠나기 전 걱정이 많았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TV로만 갈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했는데 내 등짝만 한 가방을 메고 몇십 일간 감히 내 다리로 그 긴 길을 걷게 될 줄은 몰랐기 때문에.
대부분 순례길을 걷기 위한 체력과 다양한 정보 수집 준비로 긴 시간을 쓰는데 우리는 이 여행을 결정하고 발권하기까지 오래 걸리진 않았다. J인 나는 어느 정도 계획을 세워야 마음이 놓이는 꽤 피곤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 여행을 택한 여러 가지 이유 중 하나는 많은 랜드마크 방문과 맛집 탐방 등 디테일한 계획을 세우는 것은 잠시 접어둘 수 있기 때문이었다. 여행의 가장 큰 목표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를 향해 "걷는" 계획이 있었기 때문에 그보다 작은 계획을 세우는 데에 덜 집착할 것 같았다. 그 대신 산티아고로 향하는 많고 많은 길 중에 많은 사람들이 걷고 정보도 많은 프랑스 루트(Camino Frances)로 결정하며 세세한 계획을 세워야 하는 부담감은 조금 내려놓기로 했다.
순례길 준비를 하면서 나 또한 가장 많이 검색하고 걱정했던 것은 어떤 배낭/가방과 어떤 등산화를 선택하는지이다. 굉장히 많은 질문과 걱정의 글을 보았는데 순례길을 가기 전과 다녀온 관점에서 배낭과 등산화에 대한 나의 생각과 정보를 공유하려 한다.
배낭 선택 [Gregory -Stout 45L / Gregory -Amber 34L]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내가 원하는 등산 가방의 기능을 믿고있고 갖고 싶은 가방이 있다면 그 배낭을 구입하는 것이 좋다.
배낭을 메고 순례길을 걸으면서 내 몸에 맞게 가방끈, 물건들의 위치, 여러 가지를 조절하면서 더 편한 것을 연구하게 된다. 왜냐하면 어깨도 허리도 덜 아프고 싶고, 휴식할 때 간식을 좀 더 효율적으로 빼고 싶고, 핸드폰도 빠르고 편하게 꺼내서 사진도 찍고 음악도 듣고 싶으니까.
대부분 오스프리(Osprey) 제품을 많이 구입하던데 남편이 백팩은 그레고리(Gregory)가 최고라고 그레고리 배낭 중에 디자인과 적절한 가격대로 구입했다. (스타우트-남성용 45리터, 앰버-여성용 34리터)
여행의 핵심 아이템이고 배낭여행용 가방을 태어나서 처음으로 사는 거라 신중하고 또 신중하고 싶은 마음에 그레고리 매장을 헤집어놓았던 것 같다. 하지만 매장에서는 아무리 메고 놓고 해 봐도 짐도 안 들어간 상태에서 어떤 게 편한지 불편한지 잘 모르겠더라. 순례길 가기 전 내가 선택한 가방이 주머니 개수가 적다고 순례길에 좋은 가방이 아니라는 평을 들었는데 지금 시점에서 이야기하자면 주머니 개수가 많든 적든 내 몸이 배낭에 적응한다.
순례길을 떠날 배낭은 애지중지해 봐 짜 땅에 굴려지고 던져지고 좋은 대우를 받진 못하게 된다. 난 나름 결벽증이 있어서 땅바닥에 물건을 놓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배낭은 숙소 침대 위에 올리면 안 되고 숙소에 배낭을 위한 공간이 많지 않아서 순례길 초반에 바닥에 배낭을 두는 것이 꽤나 적응하기 힘들었다. 그러니까 새 가방을 구입하는 사람은 배낭 선택하는데 너무 큰 고민은 들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등산화 선택 [Fiveten -Camp Four Mid & Quechua / Millet -Elasmo]
등산화는 내 발에 길들여진 가장 편한 신발을 신는 것이 가장 좋은 결정이 아닌가 싶다. 평평한 길도 많지만 대부분 힘든 코스의 산길은 돌로 이루어져 있어서 오르막 내리막에는 등산화를 신는 것이 발을 보호하기엔 좋지만 어떤 제품이 좋은지는 정답은 없다고 생각한다.
순례길 용으로 비싸고 좋은 기능의 신발을 새로 구입한다고 물집이 안 잡히는 것도 아니고 발이 안 아프지도 않다. 남편은 십 년 된 파이브 텐 등산화를 신고 가서 비를 좀 맞고 며칠 걸었더니 밑창이 떨어졌고 결국 현지 데카트론에서 39.99유로짜리 새 신발을 구입했다. 대도시에 있는 데카트론을 가기 위해 밑창이 떨어진 파이브텐 등산화로 몇 일을 걸었고 비싸지 않은 새로 구입한 신발로 나머지 여정을 걸었지만 그는 순례길 도중 단 하나의 물집도 잡히지 않았다. 그는 데카트론 등산화는 가성비는 좋지만 험한 산길 용으론 추천하진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파이브텐 등산화는 극찬했다.
첫 등산화를 선택하는 데 있어 배낭만큼 많은 고민을 했고 보이는 등산화마다 발을 집어넣었던 것 같다. 그중 발볼이 가장 편하고 발목 보호를 위해 목도 있고 가격도 합리적이라고 생각되어 밀레 엘라스모 미드 제품을 선택했다. 순례길을 함께한 이 등산화에 대한 내 만족도는 높다. 순례길 초반에 이유 없이 뒤꿈치와 복숭아뼈 사이가 부어올라서 등산화가 닿기만 하면 걸을 수가 없어서 괜히 목이 있는 등산화를 샀나 싶기도 했지만 그건 아무래도 덜 길들여진 신발이라 내 발목이 자극을 받아 발생된 것이라 생각된다. 새로 등산화를 구입해야 한다면 여러 제품을 신어보고 가장 편한 신발을 구입해서 길들이는 시간을 갖는 것이 좋겠다.
직접 가서 본 순례자들의 신발은 등산화도 있지만 트래킹화(Salomon, Sketchers)가 꽤 많이 보였고 이 외에도 스포츠 샌들, 운동화, 나처럼 아픈 사람은 슬리퍼로 번갈아 신으며 걷기도 했다.
글을 쓰다 보니 꽤나 길어졌는데 나의 생각이 산티아고 순례길을 계획하는 분들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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